5월 3일

1시에 아이를 보러 들어간다. 손을 씻고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간다. 아이 위치가 적힌 판을 보니 내아이의 위치가 제일 안쪽이다. 한걸음 때기가 어렵다. 누워있는 아이가 보인다. 솔찍히 누워있는건지 처음엔 안보였다. 너무 작은 우리 아이. 빨갛고 작은 아이의 발이 제일 먼저 보였다. 그리고 손, 손위의 무수한 관들, 덜컹거리며 뛰는 심장, 눈위를 가린 밴드, 손톱보다 작은 입속에 들어간 인공호흡관.. 멍하다. 560그람,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보다 가볍다. 내아이다
5월 5일

어린이 날이다. 그리고 병실에서 보호자로 잠을 잔 첫날이다. 아침으로 먹을게 별로 없어서 밑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랑 샐러드를 골라왔다. 새벽 5시에 20분간 면회 1시 면회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샐러드를 열었는데, 오옹? 살아있는 개미가 풀사이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혹시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기도의 응답인가. 개미를 살려주어야겠다. 밀봉되있는 샐려드에서 개미라니. 살아서 걸어다니는 개미. 평소엔 기분나빳을 것들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저녁 면회에서 아이는 크게 안좋아 보였다. 폐에선 피가, 피소변이 나오고, 아.. 포기해야하나. 이렇게 아프게 있을바엔 하나님이 편하게 거둬주길 기도해야 하나. 모르겠다.


5월 10일

아내가 꿈을 꾸었다. 방안에 가득한 겹벛꽃과 따놓은 꽃들, 아침부터 상쾌했다. 아침부터 어머니가 음식을 하신다. 마음이 지쳐가던 때에 어무니는 항상 큰힘이 된다. 뜨듯한 미역국과 함께하는 조금은 늦은 아침.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폭풍속의 주를 같이 들었다. 내가 알고있는 배경지식까지 설명하며 내가 콘서트때 받았던 감동을 같이 전하려 했다. 괜히 눈물이 나온다. 1시가 다되어 간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 가슴 한쪽이 꽉막힌듯 엄청 긴장이 된다. 가는길 내내 그 노래를 듣는다. 

내가 할수있는건 기도말고는 할게 없다. 아들은 겉보기엔 조금 나아진듯 하다. 의사의 설명을 차분히 듣고 기억하려 노력한다. 아내에게 전해주어야 하기에.. 듣기엔 이게 좋은 뉴스인지 나쁜 뉴스인지 모르겠다. 첨으로 아들의 뇌에 고인 피가 찍힌 사진을 보았다. 담담하게 굴려고 노력한다. 본다고 내가 할일은 없다. 병실을 빠져나와 아내가 말한 겹 벚꽃을 찾아보려 한다. 병원 뒤에 어디 있다고 했었는데, 결국 찾았다. 꽃은 없지만 푸르름은 가득하다. 활짝 핀 꽃은 아내꿈에, 우리집에 있는걸까.
5월 12일

희망과 절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는것 같다. 아내의 혈압은 차츰차츰 낮아지고 있다. 그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나가기전 아내의 밥을 차려주고 아이를 보기위해 집을 나섰다. 몇일째 이어지는 긴장감, 매시간 반복되는 치열한 감정들의 대화. 아이는 어제보다 큰것 같다. 아마 아내가 보면 놀라겠지? 하지만 아직 갈길이 너무 멀단다. 심장 초음파를 찍었다는데, 아마 내일쯤이면 동맥관을 닫기위한 어떤 시술을 할지 결정될 터이다. 담담하다, 내코를 닮은 우리 아이.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수시로 바뀌는 미래들, 우리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수 있을까? 두터운 불안감 위에 얇은 희망으로 덮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따. 오늘은 아내와 같이 TV로 예배를 드렸다. 갑자기 아이의 증상을 검색해 보았는데, 역시나 좋지않은 결과물들만 검색된다. 그래, 이런거 보지말자, 다짐했다. 머릿속이 먹먹하다. 내가 무얼 바라보며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5월 24일

매일 매일이 그 전날 같다. 매일 매일을 후회와 미련속에 하루를 마무리하는것 같다.
자고있는 아내를 보며, 그 전날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만약 그떄로 돌아간다면, 잘 대처할수 있었을까. 
슬프다. 적응이 될만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우리 새벽이는 어떻게 될까.
두발로,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수는 있을까. 
막막하다. 두렵고 또 두렵다. 내가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일수 있을까.. 겁난다.
그래서 슬프다. 언제쯤 적응될까. 언제쯤 다시 평범해질수 있을까.
모든것이 내게서, 우리에게서 떠나가는것 같다.
새벽 1시, 고요한 이시간, 새벽이는 무엇하고 있을까.
문뜩 궁금해졌다.
6월 4일

이제 진짜로 한숨 놓아도 되는 걸까. 오늘 의사의 말은 꽤나 희망적이고 그동안의 고통을 보상받는듯 하다. "이제 백질연화증 진단은 없을꺼 같고, 뇌실은 커지지는 않았지만 피도 흡수 되는듯 하고, 숨도 잘쉬고, 똥도 잘싸고, 이제 잘 크는 일만 남았습니다." 한달 하고도 2틀이나 지났다. 새벽이는 그동안 혼자서 이만큼이나 해내었다. 작은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적어도 심적 피로감은 많이 덜어냈다. 아이가 많이 먹으니까 모유를 정말 가득 준비해야할 것 같다. 

온세상이 달라보인다. 차가 막혀도 스트레스가 없다. 정말 많은 질문들과 고민들속에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건강하게 사는것 그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동안의 내가 살아온 삶을 한번 돌아본다.

새벽, 김새벽. 내 아들의 이름이다.
새벽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작이지만 나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던 새벽.
고요하고 고독한 그 시간이 너무 좋다. 깜깜한 거리에 가로등만 켜진 거리를 보며 느끼는 해방감과, 집앞 편의점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담배를 필때의 여유로움. 새벽은 모든 복잡한 풍경들을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새벽이 되면 나는 자유를 느꼇고, 약간의 감성을 더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줬다. 내 아들은 그런 새벽에 갑작스럽게 태어났다. 새벽이는 너무 작았고, 위험했다. 나는 여러가지 희망적인 이름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새벽이 떠올랐다.
7월 5일

뭐가 문제일까, 새벽이는 쑥쑥 잘 크고있고, 매일매일 좋아지는데, 난 짜증이 늘고있다. 답답하다. 뭔가 꽉 막힌것 같다. 풀리지 않고, 이유도 모를 짜증이 밀려온다. 숨쉬기 힘든 느낌이다. 원인을 모르니 답답하다. 출근전에 아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힘내자 그동안 수고했잖아' 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혼자 타고 가는 차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한적이 언제였지? 난 수고한건가. 만 두달이 지나면서 모든게 안정적이 될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마음속 깊숙히 자리잡은 응어리는 아직도 해결중인것 같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낫지. 죽을꺼 같진 않으니까. 

8월 3일

새벽이는 2220그람이 되었다. 새벽이를 안고있노라면 제법 묵직함이 손끝에 전해져온다. 우리 새벽이 언제 이렇게 컸지, 요녀석 발목좀 보게, 인상쓰는것좀 봐, 볼살 빵빵한것좀 봐, 배가 뽈록하네, 우리의 대화는 이제 달라졌다. 오랜만에 광주에서 올라와 새벽이를 한번안아보고 난 감기가 걸리고 말았다. 낭패다. 감기가 옮을까봐 하루에 10분도 보질 못했다. 오늘 오랜만에 안아본 새벽이의 묵직한 머리무게에 감탄하고, 귀를 코에 가져다 대고 숨소리를 듣고, 볼살을 만져보고, 새벽이가 행여 눈이라도 뜨면 눈동자에 내모습이 비춰지게 이리저리 내가 움직여보고, 발가락을 간지럽혀보기도 하고, 수염처럼 자란 머리를 쓰다듬고, 귀도 만져보며 30분을 보냈다. 신기하다. 내아들 새벽이, 정말 장하다. 혼자서 다 해내었다
- 신생아 중환자실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

새벽이를 첨 봤을때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합니다. 힘없이 뛰고있는 새벽이의 가슴과, 구부러진 다리, 발가락과 손가락, 수없이 꽂혀있던 라인들,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하루하루가 위기였던것 같고, 하루하루가 죽을만큼 힘들었던 시간들 이었습니다. 560그람은 NICU아가들중에 제일 낮은 숫자였습니다. 처음엔 새벽이를 포기했습니다. 차라리 아프지않게 떠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수없이 울려대던 경고음과 숫자들과의 긴싸움이었습니다. 어느날 새벽이의 몸무게가 480그람까지 떨어졌을때 정말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가보면 황달 조명이 하나 없어져있고, 어느날 가면 호흡기 방법이 바뀌어지고, 또 어느날 가보니 라인이 하나하나씩 빠지는 모습을 보며 그런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뚱뚱한 새벽이는 정말 그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새벽이의 뇌가 걱정되서 매일매일 울었습니다. 아이가 두발로 서서 가고싶은데는 갈수 있을까, 자기 의지대로 손발을 움직일수 있을까, 그런데 이병섭 교수님이 새벽이의 뇌는 괜찮다는 말을 듣고 4주만에 처음으로 외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이는 지금까지 교수님과 여러 간호사선생님들의 간호 덕분에 무사히 컸습니다. 마스크쓴 교수님을 보다가 마스크 벗으신 모습을 봤을때도 놀랐습니다. 너무 동안이셔서... 항상 같이 걱정해주시고 적절한 치료방법으로 새벽이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이를 처음 만져봤던 순간도 기억납니다. 감히 만져보려고도 못할때 한번 토닥여 주시라던 000간호사 선생님, 새벽이가 호흡이 빨라져서 걱정하니 그전 데이터까지 꺼내서 확인해주셨던 000간호사 선생님, 캥거루 케어 시작해보라고 하셨던 선생님, 새벽이를 항상 밤낮으로 지켜주셨던 모든 간호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칭찬카드를 써볼라고 했는데 도데체 이름들을 다 찾을수가 없어서 이렇게 편지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덕분에 새벽이는 560그람에서 3키로를 넘기고 퇴원합니다. 참으로 긴 114일이었습니다. 새벽이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그동안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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