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4일 

새벽, 김새벽. 내 아들의 이름이다.
새벽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작이지만 나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던 새벽.
고요하고 고독한 그 시간이 너무 좋다. 깜깜한 거리에 가로등만 켜진 거리를 보며 느끼는 해방감과, 집앞 편의점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담배를 필때의 여유로움. 새벽은 모든 복잡한 풍경들을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새벽이 되면 나는 자유를 느꼇고, 약간의 감성을 더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줬다. 내 아들은 그런 새벽에 갑작스럽게 태어났다. 새벽이는 너무 작았고, 위험했다. 나는 여러가지 희망적인 이름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새벽이 떠올랐다.

나는 새벽이가 태어났을때, 아내가 아팠을때, 길고 어두운 터널속에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시작도 끝도 어딘지도 모르는 너무나도 깊은 절망. 새벽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때 난 새벽이를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의사의 담담하게 전해주는 상황에 희망은 어디에도 뭍어있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을 버텨내는 새벽이의 생명에너지를 느끼며 난 새벽 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깜깜한 밤을 깨우는 새벽, 사물의 색깔의 시작, 하루의 시작, 움직이는 모든것들의 시작. 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동안의 새벽이 가지고 있던 뜻의 반대편을 느꼈다. 새벽은 그렇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도 힘찬 에너지로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고있다. 나는 새벽이를 볼때마다 아니 이렇게 조그마한 녀석이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올까 싶다. 너무나 신기하고, 정말 경이롭다. 

내 아이, 내 아들 김새벽. 이름이 너무 좋다. 
9월 12일

새벽 두시가 되어간다. 저녁부터 새벽 세시까지 당번을 선다. 세상이 고요한 새벽에 새벽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오밀조밀한 눈코입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언제 이만큼 컸는지. 요즘엔 새벽이 냄새를 맞는 취미가 생겼다. 제법 새벽이만의 냄새가 있다. 작은 코에서 나오는 따듯한 날숨에서 새벽이의 온기를 느끼고 그 강인한 생명력을 또한번 느껴본다. 

새벽이는 어쩌면 오늘 태어난건 아닐까. 아직까지도 입으로 잘 먹지못하는 새벽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든다. 조급함에 가끔 답답하기도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새벽이를 그냥 믿고 기다려야겠다. 

아내와 요즘 자주 다퉜다. 새벽이에게 보여주고 싶지않은 모습들을 이참에 한번더 정리하고 복습해야겠다. 아내한테 너무 고맙다. 
9월 20일

새벽이가 집에 온지 벌써 한달이 다되가지만 크게 많이 달라지 건 없다. 여전히 튜브없이는 밥을 먹을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호흡자체는 많이 좋아졌다는 점. 

얼마나 감사할게 많은 날들인가. 불과 넉달전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부부는 가끔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 토닥여주고, 새벽이를 보며 미소짓는 나름대로의 평범한 날들의 연속을 살고있다. 

아.. 너무 깊게잔다.. 안먹는 새벽이.. 튜브를 얼렁 빼버리고 싶다. 
10월 29일

어디서 부터 잘못된걸까. 한참을 새벽이를 안고 복기해보았지만, 그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욱이 새벽이의 잘못은 아니다. 오늘 아내는 끝내 돌봄에 있어서 지쳤음을 선언하고 울었으며, 새벽이를 위해 늘 하던 기도도 하지 않고 들어갔다. 나는 그 마음을 알겠어서 말리지 못했으며, 무어라 한마디 위로하지 못했다. 나도 눈물이 났다.

새벽이는 한참 잘 삼키며 늘어가던 수유량이 보라매병원 재활부터 줄기 시작해서, 결국 안먹거나 20-30사이만 먹는다. 어제 진단으로는 감기에 걸린것 같다. 어쩐지 코를 골고, 침이 많아지고, 숨쉬는게 불편해 보였다. 늘 새벽에 새벽이를 먹이는것은 그 무엇보다 고된 일이었음을 잘 알기에, 그래서 아내가 이해가 됬다.

새벽이를 안고 새벽이를 첫 만났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냥 이렇게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바엔 제발 아무 고통없이 새벽이를 대려가 달라고 울며 기도했던 그날, 새벽이의 뇌가 문제가 있을거라며 절망속에 보냈던 4주, 그리고 호흡기가 하루빨리 바뀌었으면 하고 바래며 지내온 날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지금이 제일 힘들다. 그냥 새벽이를 두발로 자기의지대로 걷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그날보다, 새벽이가 새벽이 스스로 할수있는 것을 마음것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날보다, 새벽이가 3일을 버티지 못할거라고 들었던 날 신생아 중환자실앞에 홀로 앉아 울며 기도했던 날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더 힘들다. 

12월 6일

새벽이의 백일, 정확히는 퇴원한지 백일이 지났다.
우리는 소소하게 사진을 찍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 지금.
새벽이는 여전히 튜브를 입에 달고 있지만 그래도 잘 웃어준다.
남들과 같은 백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힘겨운 시간들을 잘 견뎌온 것에 감사하며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싸웠다. 서로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너무나 지쳤던것 같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친걸까.. 생각해서 뭐하냐마는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무의미한 과거를 복기해본다. 
12월 11일

부산에 출장을 왔다. 출장을 올때마다 혼자서 새벽이를 돌봐야하는 아내때문에 항상 신경이 쓰인다. 아내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거 같다. 원래 강한사람인데, 엄마가 되니까 더 강해진거 같다.

서울은 한겨울 같은데, 부산은 아직도 가을의 끝자락에 있는듯 하다. 아직도 가로수는 노란 잎을 바람에 떨어뜨리는 중이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새벽이는 오늘은 아침부터 잘 먹은거 같다. 반찬을 가져다 주러 부모님이 오셨고, 아내는 지금 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 

마음속이 복잡하다. 새벽이가 나오고 나는 행복해졌는가? 우리는 행복해졌는가? 에 대한 짧은 답을 쓰기위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빈말이라도 난 행복해졌다 라고 쓰고싶지만, 이제는 행복이란건 어떤 의미일까 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부모가 되는건가. 우리의 시간과 눈물로 새벽이를 키우는 중인가.

이렇게 글을 쓰는중에 새벽이의 환한 잇몸웃음이 생각난다. 가슴이 찡해오고, 벅차는 느낌이 든다. 앗! 난 새벽이와 행복한거 같다. 
12월 18일


오늘은 새벽이를 앞에두고 펑펑 울었다.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12월 22일

어제 아내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미리 계획한데로 일찌감치 어머니께 새벽이를 맡기고 나갔다. 어차피 새벽이는 튜브피딩을 하는 중이라 몇가지 주의사항만 남기고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둘이서 같이 나왔다. 코엑스 까지 가는길이 무척이나 막혔지만, 그리 힘들진 않았다. 연말이다. 우리는 압축적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최대한 많은것을 즐기려 했다. 

작년 이맘때쯤 이문세의 신곡 눈 을 들으면서 예전 사진을 쭉 돌아봤던게 기억난다. 아니다.. 작년이 아니라 제작년이구나. 아무튼 연말은 아무이유없이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리 계획적으로 살지 않았음에도, 연말이 다가오면 그 해에 첫날 세웠던 계획은 잘 이행됬는지 으레 점검한다. 이럴꺼면 연초에 계획은 무슨소용이람.

 나와 아내의 2019년 계획은 참으로 거창했기에, 그래서 지금의 지키지 못한 상실감은 애시당초 없다.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됬다면, 그래서 다른 방향의 육아와 씨름하고 있다면, 우리는 좀더 쉽게 행복을 얘기할수 있었을까. 그 작은것에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함에도, 나는 왜 이다지도 쉽게 지치는 것일까. 그럼에도 쉬이 포기할수 없음에, 그럴수 밖에 없어서, 고되다. 그럼에도 이것은 결과를 바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하는 수 밖에 없다. 2019년 마무리는 이렇게 되어간다. 나는 늘 확신이 서지 않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더 헤매는 까닭에 또 괴롭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계획은 무슨 의미일까. 그래서 난 2020년의 계획은 참으로 두루뭉술하게 세워볼 생각이다.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거기에 방점을 두고 계획을 생각해 봐야겠다.

2019년은 내게, 내 가족에게 참 어려웠고, 고됬고, 포기하고 싶었고, 그래서 지옥같았던.. 그럼에도 좋은사람들로 마음이 치유됨을 경험하고, 그 조그마한 생명에서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를 경험하였고, 기적을 보았다. 나와 아내는 매일 울었으며, 그렇게 서로 잘 버텼음에 2019년 참 수고가 많은 한해였다.

새벽이는 늘 곤히 잔다. 그 모습이 신기한 까닭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눈감고 있던 새벽이의 모습이 늘 같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감사함을 안고 살아야겠다. 
그렇게 버티는수 밖에 없다.
2020년
1월 5일


새해부터 새벽이는 입원했다. 오늘로써 3일차. 집중적인 재활을 받기위해서 입원한거라서 딱히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첫날 자판기 앞에서 물병을 보았을때 데자뷰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신다를 또 마신다니.. 그날이 떠올랐다. 생수를 마신다. 그날도 한번에 항상 두병씩 마신다를 마셨다. 이번에도 두병을 샀다. 그땐 정신이 없어서 생수를 떠 마실수 있다는 것도 몰랐기에, 마신다를 하루에 몇병이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이번엔 집에서 생수병을 가져왔다. 더이상 마신다는 안마신다.
새벽이는 집중 재활을 받고있다. 입에있던 피딩튜브도 코로 옮겼다. 새벽이의 움직임도 뭔가 달라지는거 같다. 다리도 좀더 들고, 입으로도 먹고, 손도 자유롭게 쓴다. 이럴때 보면 사람 몸을 알고 이해하고 있는 재활치료사 선생님들이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 여러 얘기들을 아내를 통해 들었다. 어떤건 우리 예상보다 나쁘고 어떤건 우리 예상보다 좋다. 

사실 이렇게 오래까지 새벽이의 발달을 가지고 고민할줄은 전혀 몰랐다. 퇴원만 하면 다 끝날줄 알았는데, 다른 단계로 넘어갈줄이야.. 게다가 어디가 엔딩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뚫고 나가는 수밖에. 

그리고 이번에 잘 마치고 퇴원해도, 언제 또 마신다를 또 마시러 와야할지 모른다. 

3월 30일

오랜만에 둘이서 울었다. 엊그제 들뜬 목소리의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새벽이 튜브 빼도 된데!”
사실 난 ‘지금? 아직이른데..’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들뜬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요근래 새벽이는 이유식과 퓨레를 잘 먹었다. 입을 벌려 오물오물 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그렇게 오랜만에 튜브없이 먹이기를 시도했다. 예전에도 매번 실패했던터라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과 함께.

결론부터 얘기하면 무리였다. 하루종일 새벽이를 먹일려고 동분서주 하였지만, 오후 4시가 되어서까지 새벽이는 320을 넘지 못했다. 예전에 비하면 물론 엄청 발전했지만, 만약 새벽이가 재활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마 이것도 못먹을게 뻔했다. 난 바로 백기 투항했다. 늦기전에 다시 튜브를 넣자고. 

너무 슬펐다. 딱히 뭐가 슬프다고 콕 찝어서 얘기하긴 그렇지만,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아물어가고 있었는지 확인해볼수 있었다. 아직 멀었다. 튜브를 넣고, 아내와 난 누가 뭐라할것도 없이 울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답답함.. 절망.

작은것 하나에 감사하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 경지까지 이르기엔 도대체 얼마나 많이 깨지고 아물고를 반복해야 하는 걸까. 언제쯤 새벽이는 입으로 밥을 먹게 되는걸까. 
4월 9일


벚꽃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폈다. 새벽이는 점점 또렷해져간다. 매일매일이 신기하다. 새벽이가 놀고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는 시간이 너무 재밌다. 무언가 바라보는 새벽이의 눈빛과 집중했을때의 입모양, 신나서 움직이는 앙증맞은 팔과 손, 너무 신비롭다. 우리 작은인간. 

우리는 저번주 일요일 집앞 공원으로 첫 외출을 감행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를 걸으면서 처음으로 밖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같이 걸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해서 걱정이 좀 됬지만, 그래도 첫 시도치고는 무탈하게 끝났다. 같이 앉아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새벽이와 대화하는 그런 평범한 날들을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해냈다. 

이제 벚꽃이 바람에 날라가고 있다. 그때의 계절이 오고있다.
5월 15일

3일동안 콧줄없이 생활하다가 결국 줄어드는 오줌양에 콧줄을 끼고 말았다. 피딩튜브. 애증의 관계. 새벽이를 키우는건 얼마 남지 않은 말을 가지고 두는 장기같다. 장군과 멍군의 반복. 매번 돌려막는 장기 말들로 새벽이가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벽이의 콧줄은 치명적이다. 콧줄없이는 수분공급을 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고, 새벽이는 아직 입으로 음료를 잘 못먹는다. 이번에 시도가 몇번째였던가. 결국 예상대로 오줌량이 너무 줄어서 다시 콧줄을 달았다. 콧줄이 없던 날이 거의 없어서 이제 콧줄 자체가 맘에 걸리거나 하지 않는데, 한번씩 시도하다가 다시 넣었을때는 그냥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지금 휴가중이다. 꼭 한번 가고싶었던 우리만의 여행이다. 영원히 못나갈꺼 같던 밖으로 또 한번 나왔다. 이번엔 2박 3일. 짐이.. 이사가나 싶을 정도로 많다. 아직 새벽이, 아니 돌도 안지난 아기를 데리고 여행가는건 역시 만만찮다. 그냥 집에서 육아를 여기와서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아내는 좋아하니 다행이다. 

아.. 이놈에 콧줄은 언제쯤 떨어질까.. 지겹고, 괴롭고, 하지만 때고 싶어도 땔수 없는...  
그래도 게임은 끝나게 되어있고, 흐름은 우리에게로 천천히 기울고 있다. 
8월 1일

부모가 된다는건 거창한 단계를 거쳐서 되지 않는것 같다. 문뜩 정신 차려보니 가족이 한명 더 늘었고, 늘 신경써줘야하는 작은 사람이 한명 더 있다. 부모가 된다해서 삶이 크게 바뀌었다 라고 생각들지 않았는데, 문뜩 돌아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있었다. 내가 애써서 깔끔하게 유지하려던 집안 구조들과, 끊임 없이 버려도 계속 생성되는 물건들. 단지 단순한것만 얘기하자면 그렇다. 늘 내일의 새벽이에 새로운 부모가 되기에 부모노릇이란 참으로 어렵다. 

몇일째 우중충하고 습한 장마다. 일기예보는 앞으로도 쭉 비 표시를 하고 있다. 토요일, 어둑어둑한 밖을 보며 커피한잔 하려 준비하는데, 낮잠자던 새벽이가 일어났다. 습도를 좀 잡아보려 켰던 보일러가 너무 더웠던 모양이다. 뒤통수가 눅눅한 새벽이를 안고 조금더 재워보려 침대에 같이 누웠다. 그사이 창밖은 색깔마져 지워버릴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은 온통 물방울로 가득하고, 비몽사몽 새벽이는 내 가슴에 붙어 내리는 비를 곤히 보고 있다. 참으로 신기했다. 새벽이가 누르는 작은 무게가 왼쪽가슴에 전달되며 내 심장 박동이 울렸다. 우리는 그렇게 십분을 넘게 창밖을 보며 서로의 따수함을 느꼇다. 왠지 그 어느때보다 부모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벽이는 하품을 몇번 하더니 스르륵 눈을 감았다. 또다시 곤히 자는 새벽이. 잘때가 제일 예쁘다.... 왜지..
10월 4일​​​​​​​

바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파도가 거세게 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창문을 다 닫고도 귀에 때려박혔다. 그래도 창문만 열면 보이는 시원한 풍경은 비가 오던 말던 상관 없이 깨끗했다. 게다가 창문밖에 귀염둥이 고양이 한마리가 끊임없이 재잘대는 바람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오히려 새벽이 말동무가 되어줘서 반가웠다. 내가 가는 여행엔 자주 비가 왔다. 폭풍수준의 비부터, 잔잔하게 내리는 비까지 온갖형태의 비와 함께 여행했다. 때론 분위기가 좋기도 하고, 때론 야속하기도 했던. 이번 여행의 비는 야속반, 고마움 반이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새벽이가 추울까바 걱정했는데, 바람의 언덕위에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새벽이의 미소를 만들어줬다. 이번 여행은 이렇게 늘 반전의 연속이었는데, 제일 큰 반전은 처음이라 생각했던 여행지가 새벽이 퇴원전에 했던 여행지였다는 것. 너무 깜짝 놀랐다. 묵호항에 주차를 하고 걸을려는 찰라 아내가 우리 여기 왔었다 라는 말에 모든 기억이 다 떠올랐다. 그랬다.. 그때는 삼척에 여행왔었다 생각했던 그곳이 동해였었다. 한번 왔던 곳을 다시 왔다는 후회감보다는 우리가 왔던 곳을 돌아보며 이번엔 1년만에 새벽이랑 왔다는 안도감에 졸지에 추억 여행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따숩다. 우리가 갔던곳을 새벽이랑 다시 오다니. 우리가 걸었던 곳, 쥐포를 샀던 건어물 가게, 묵호항,  바람의 언덕, 다 그대로인데 우리는 셋이 되서 왔다. 불안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던 1년전에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따듯한가!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여행은 시즈오카 여행이고 그다음은 이번 동해시 여행이 되었다. 이런 느낌의 여행을 또 가고싶었는데, 그것도 새벽이와 함께 하다니, 행복했다.
11월 30일​​​​​​​

사진을 정리했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내 사진 일기는 매일매일 찍는것으로 시작해서 새벽이가 좋아지면서 그 사진 한장 찍을 정신조차 없을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도 틈틈히 사진을 찍었고, 정리했다. 3월에 찍은 새벽이와, 8월에 찍은 새벽이는 많이 달랐다. 우리의 시간을 새벽이에게 보냈고, 새벽이는 그만큼 컸다. 나는 늘 연말에 내가 한해동안 찍은 사진을 정리하곤 하는데, 2020년은 무언가 다르다. 4월의 예쁜 벚꽃과, 5월의 콧줄 없는 새벽이, 6월의 첫바다를 마주한 새벽이, 8월의 퇴원 1주년때의 새벽이, 본격적인 육아인 9월 그리고 10월 사진 한장 한장이 다 어제와 같은 느낌이 든다. 시간을 초월한 느낌이랄까.

신비하다. 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과 그리고 새벽이.
12월 18일

새벽이의 거울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면 내 모습이 투명하게 비춰진다.
창문밖의 회색하늘은 더없이 조용하고, 나는 아직도 답 없는 고민들과 걱정들로 점철되고 있지만,
새벽이를 안고 재우는 그 고요한 시간속에서, 새벽이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속에서,
검은 겨울밤을 부수는 새벽빛같은 평온함을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다 새벽이는 눈을 살포시 감는다.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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