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곧 베이징으로 떠난다. 얼마전에 도쿄에서 온것 같은데, 또 한달간 중국으로 출장을 간다. 이번엔 그래도 마음이 적응이 좀 된 듯 하다. 그런데 싱숭 생숭하다. 또 떨어져야 하다니. 어제 새벽이와 엘레베이터를 타는데, 같은 층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할머니는 대뜸 또래에 비해 키가 크다고 했다. 나는 첨엔 그저 그런 칭찬인줄 알았는데, 행동이 키에 안맞다고 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같은 또래에 비해 크다는 의미로 얘기했으니까.

가슴 한켠이 살짝 데인 느낌이었다. 새벽이만 봐왔던 터라, 나는 잘 느끼지 못했었다. 마냥 조금 발달이 느리다고만 생각했지 이젠 제법 티가 나는 모양이다. 생각이 많아졌다. 불안감과 함께 뒤섞인 걱정들은 늘 압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어제 그 단순한 대화로 부터 걱정은 무한으로 팽창했다. 또 시작된 무한의 질문과 알수없는 답의 반복.

여기까지 늘 생각해야한다. 상대방의 의도치 않은 호의 섞인 말에도 가끔은 괴롭다. 보이지 않는 수와 수싸움. 끊임없이 수읽기를 해야한다. 그래야 덜 아프다. 새벽이의 덩치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발달은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작년엔 매일이 슬펐다면, 새해에는 좀 덜 슬펐으면 한다. 덜 자주 슬펐으면 한다.

4월 8일

시간은 일정하게 한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물리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나의 시간 그리고 새벽이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시간과 엇갈린 새벽이. 몇주나 먼저 태어난 새벽이는 아직도 시차가 존재하는 새벽이만의 시간대에 살고있다. 나는 늘 아침마다 눈을떠 새벽이의 시간대로 들어간다. 그 시간대 속에 있을때 나는 새벽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일수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었다. 시차를 줄일려고 부던이도 노력했다. 점점 뻗쳐가는 발목을 보며,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새벽이의 입술을 보며, 혹시나 감지하지 못한 이상행동이 있지는 않을까. 내 세계의 시차와 새벽이의 시차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벌어져있다.

작년 말 나는 너무 우울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새벽이의 행동을 만들기 위해, 안좋은 습관은 버리기 위해 늘 고민했다. 내가 우울한지도 몰랐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날카로웠다. 정수리까지 차있는 시려운 분노와 가슴속 깊이 어딘가에 있는 꺼지지 않는 불덩이. 툭 건들면 어느 날은 불같이 타올랐고, 또 냉소적이었다.

머릿속엔 새벽이 발달 뿐이었다. 결국 새벽이는 2주의 입원을 했고, 장애진단을 받았다.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새벽이가 없던 2주는 처음이었다. 아침에 먹먹함도 오랜만이었다. 새벽이가 입원한 2주동안 내가 불쌍했고, 우울했고 그래서 내가 나를 보기에 괴로웠다고 스스로에게 고백을 했다. 그러고 나니 사실 새벽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됬다. 새벽이는 나름대로 새벽이의 발달의 시간대로 커가는건 아닐까. 불안한건 내 자신이고 혹시나 모를 미래를 지금부터 괴로워하는것도 내 자신이구나.

매일아침 눈을 뜨면 새벽이의 시간대로 들어간다. 모든 편견을 잊고.
새벽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시간대.
말은 안통하지만 서로 통하는 눈빛이 존재하는 시간대.
새벽이의 몸짓으로 한바탕 웃을수 있는 투명한 시간.

새벽이와 나와의 존재하는 시차.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차.
4월 24일

요즘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련된 시위와 국민의 힘 당대표의 정치적인 발언에 관련된 뉴스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도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장애와 관련된 글을 써볼까 한다.

장애인과 장애우 어떻게 불러야 하는것인가 에 대한 논란도 있었을 당시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굴러 사망한 뉴스에도, 자기 집 근처에 발달장애아를 위한 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뉴스에도, 광화문 지하철 역에서 한참을 농성하던 장애인 집회를 취재 하면서도,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적 없었다.

2019년 5월 3일, 의사 선생님으로 부터 새벽이가 가지게 될 장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그동안 내가 인지 하지 못했던 차원의 세계가 존재함을 깨닫게 됐다.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 그때부터 모든것이 새로웠다.

그때당시엔 새벽이가 자기발로 걸을수 있을지, 멀쩡하게 서있을수나 있는지 모든것이 불투명했다. 갑자기 다가온 생전 처음 해보는 고민에 결국 만약에 뭔가 있다면, 내가 새벽이를 데리고 평생 살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건 마치 내가 살고있는 세상의 색깔이 변한 느낌이었다.
5월 13일

잘될꺼야 라는 막연한 응원으로도 이번만큼은 쉽지 않겠다 할때가 있다. 그동안 무수히도 많은 문제들을 지나왔지만 오늘 소아과 검진은 쉽지 않았다. 알고있는 내용을 의사의 말로 들을땐 무게가 다르다. 
이번에 오랜만에 아주 무방비 상태로 들은 의사의 진단은 사실 괜찮음에도 괜찮지 않았다.
진료가 끝나고 재활실 뒤에 공터에 오랜만에 멍하니 앉았다. 초록초록한 이파리들을 한가득 품은 나무들이 부벼대는 소리. 그날과 닮은 여전한 풍경들. 잘될꺼라는 말이 섣불리 나오지는 못했다. 근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차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이 다리를 마사지하고 재활을 하고 밥을먹이고 어린이집에 손잡고 걸어가는것은 변함이 없을테니까. 언제나 새벽이 옆에 있을꺼라는 다짐은 변하지 않으니까.
5월 29일

엊그제 새벽이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새벽이랑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내내 차안은 적막했다. 그러면 나는 새벽이에게 더 미안하다. 뭐라도 얘기해줘야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발달의 차이는 생각보다 심했다. 소아정신과를 가봐야 할 듯 하다. 걱정했던게,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들이 현실화 되는 순간. 어차피 전화로 들었지만 아내입으로 한번 더 듣고 싶었다. 달라질건 없었다.

어디에 시선을 둬야할지 모를 기분. ‘이럴줄 알았지, 이럴 수도 있을줄 알았지’ 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상황이 되었을때의 대비는 못했다. 오른쪽 가슴부분이 조여왔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강해야 이런 상황이 닥쳤을때 또 해쳐나갈수 있을까. 만 3년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날의 기분이 또 느껴졌다. 그날처럼 막막했다. 그때의 기분을 다시는 못느낄꺼 같았는데,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또 다시 그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울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울다가 새벽이한테 아빠 너무 슬프니까 안아달라고 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새벽이가 안아줬다. 토닥토닥거리는 작은 손이 등에 한가득 느껴졌다.

6월 8일

차츰 적응되는 듯 하다.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다시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로 했다. 나는 어쩌다 아빠가 되었을까. 이제는 새벽이 없는 삶은 상상할수 조차 없는데, 처음부터 그랬던것은 아니었다. 새벽이를 알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더 사랑스럽고, 더 애처로워지고, 더 슬퍼진다. 머릿속 구석구석 가득가득 새벽이가 꽉차있다. 새벽이만 생각하면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새벽이랑 같이 손잡고 걷다보면 발 끝까지 행복함이 가득하다. 뭐든 다 해줄수 있고, 만약에 어떤 상황에서 내가 희생해서 새벽이를 살릴수 있다면 지체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재활 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기존에 다니던 언어치료센터는 관두고 새로운 병원에서 다양한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시간대를 화 수로 정했다. 최대한 새벽이가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다가 병원에 갈수있도록 시간을 조절했다. 내가 대리고 다닐수 없으므로 부모님이 데리고 다녀야 한다. 수요일은 어머니가 권사찬양단 연습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어머니는 잘 해보겠다고, 안되면 찬양단은 안가면 된다고 하셨다. 나는 포기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과 새벽이는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마음에 복잡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하나 하나 포기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주말마다 타던 자전거, 친구들과의 약속, 일본어 공부, 게임, 자유시간, 내가 포기하는 것들은 딱히 나는 힘들지 않았다. 어떻게 다 하고 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포기할걸 생각하니 답답했다. 평생 일하시고, 시부모님 모시고 사시다가 이제서야 하시는 것들을 내가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로웠다.
7월 6일

어제는 놀이치료 선생님 앞에서 울어버렸다. 이것 저것 물어보는 내 눈빛이 절실해 보였는지, 위로해주는 말에 눈물이 나왔다. 불확실한 미래로 슬퍼하지말고 지금 이순간 너무 예쁜 새벽이를 그대로 보고 즐기라는 말에 뭔가 뒤통수를 쎄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일을 관둬야하나 그간 고민했다. 혹시나 지금이 골든 타임이라면 내가 더 붙잡고 자극을 준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가는걸까. 막막했다.

자식을 위해서는 내인생은 절때 포기하지 않을꺼라던 내 다짐은 한순간의 객기 같았다. 나는 새벽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오고 벅차오르는 행복도 느낀다. 새벽이를 위해서라면 정말 모든걸 다 줄수 있다. 만약에 내가 내일 당장 가진 모든걸 잃어버리고 새벽이가 잘 큰다는 보장이 있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정말 다 버릴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감정이다. 차곡차곡 켜켜이 쌓인 사랑이 두터워질수록 그런 감정은 더 확고해진다. 뭐든 다 줄수 있는 그런 느낌. 힘들어도 달릴수 있는 그런 힘.

이번 3주간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새벽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산도 갔고, 키즈카페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고, 수영장을 데리고 가서 둥둥 떠다녔고, 새벽이가 커가는걸 느꼈다.
9월 16일

새벽이가 태어나고 나서 부터 매일 매일 쓰던 일기가 일주일에 두번, 한번 으로 줄더니 이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쓰는 날도 생겼다. 때때로 절망적이었던 감정, 희망에 부풀었던 순간, 새벽이의 기특했던 시간들이 모여 벌써 65페이지가 넘어간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란걸 써본적이 없는데 한때 절실했던 마음으로 써내려간 일기가 벌써 책 한권 분량을 훌쩍 넘어간다. 절망에서 기쁨으로 넘어가는 순간들로 점철될줄 알았지만, 오랜만에 둘러본 일기에선 늘 그렇지만은 않았다. 때때로 절망에서 더 깊은 절망으로, 그리고 또 기쁨으로. 참으로 울퉁불퉁한 굴곡 많은 지난 3년이었다.

나는 늘 기쁜 상황이 펼쳐질땐 오히려 더 긴장이 된다. 어느날 갑자기 이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늘 끝까지 의심하고 걱정한다. 얼마전 몇달간 준비해왔던 프로젝트가 마지막 한순간에 날라가버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던 프로젝트라서 이게 망할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망했다. 모텔방에 앉아 멍하니 이메일을 보는데 늦은 저녁으로 먹을 짜장면이 도착했다. 탕수육까지 포함된 1인 세트. 그런데 탕수육 소스가 안왔다. 이메일을 보며 가슴이 쿵쾅 거리고 탕수육을 보면서 집이 생각났다. 나는 여기서 뭘하고 있던걸까. 미끌미끌한 물이 나오던 오래된 여관방에서 아둥바둥 편집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런적도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망했구나. 몇달을 조사했고 준비했는데. 나는 어떤일이 실패하던간에 일단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 부터 스스로 물어본다. 그럼에도 이런일이 벌어졌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다. 아 물론 쌍욕은 나온다.

그럴수 있지.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지. 이렇게 될수있지.

새벽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의 변화다. 나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는걸 극도로 싫어한다. 성격은 또 그렇게 계획성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수싸움을 하느라 머릿속은 늘 뒤죽박죽이다. 그런 나에게 새벽이가 왔다.

새벽이가 6월 8일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스스로 하고 나서 말이 부쩍 많이 늘었다. 어느 때는 1초도 가만히 안있고 쉬지않고 떠들때도 있다. 반절은 알아듣는데 어디선가 배워온 나머지 반절은 알아듣기 힘들다. 그리고 피아노를 이제는 그냥 친다 수준이 아니라 제법 잘 친다. 단풍잎같은 손이 오밀조밀 건반위를 뛰어다니는걸 보면 정말 신기하다. 이제는 젓가락 행진곡까지 칠줄 안다. 오늘은 새벽이가 유난히 싫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똥이 마렵다길래 화장실에 데려가 변기에 앉혀볼려고 거진 20분을 말씨름을 했다. 좋게도 얘기하고 진지한 표정도 지어보고. 결국 손톱만한 똥이 떨어지는 것 까지는 허락해줬다. 왕건이는 한참 뒤에나 기저귀 안에서 푸짐하게 나왔다. 요즘에는 기저귀를 벗겨놓으면 오줌도 안쌀려고 한다. 꼭 기저귀 안에서만 쌀려고 하는데, 뭐 이것도 어느정도 발전이 있는 듯 하다. 결국 재활시간도 많이 늦어졌고 재활하랴 밥먹이랴 정신없이 시간이 가버렸다. 시계는 어느새 9시 25분이다. 9시 15분에는 나가야 가면서 거미도 보고 숨바꼭질도 하고 뛰기도 하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나와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새벽이가 갑자기 “아빠 사랑해~” 라고 했다. 그 순간 아침에 변기에 앉힐려고 억지로 대했던 내 모습과, 옷입힐려고 하는데 장난치던 새벽이를 혼내려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려고 그런건 아니었는데. 사랑한다고 대답하고 서로 안아줬다.

기쁜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어김없이 긴장된다. 새벽이는 어디까지 왔을까.
10월 28일

어느 영상에서 한 연예인이 살면서 세번의 기회가 꼭 온다는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돈다. 나에게 세번의 기회는 언제였나. 단연코 첫 기회는 사진과에 입학한게 맞을 듯 하다. 처음으로 대학이라는 곳이 어떤 역활을 하는지 알게 됬고 지금 사진기자를 하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두번째는 아무래도 새벽이가 기적이 아닐까. 걷지 못할것이라는 예측과는 다르게 잘 걷고 뛰고 있으니.

새벽이는 요즘 폭풍 성장을 하고 있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정도로 무언가 습득하고 표현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굳이 무언가 설명하고 가르쳐주고 그것을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 없을 정도. 재미삼아 웃긴 표현을 알려줘도 나중에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쓸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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